Fr. Felix M. Villarreal Castelazo, S.J
(펠릭스 빌라레알 신부)
1999.01.03

1945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빌라레알 신부는 입회 전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교(Iberoamericana University)에서 공학사와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1970년 9월 26일 예수회 멕시코 관구에 입회하였다.
1971년 그는 멕시코 국립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73년까지 ITESO 대학교(Guadalajara) 연구소에서 조교수 및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예수회 철학 및 신학 과정을 밟는 동시에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76년 한국에 도착하였고 1978년 여름에 사제 서품을 위한 신학 과정을 마쳤다. 이후 서강대학교 전산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하면서 1979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에도 서강대학교에서 교수 및 학과장으로 봉직하였으며, 전자계산소 소장으로서 오랜 기간 헌신하였다.

(빌라레알 신부의 첫 미사)
빌라레알 신부는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신했던 예수회원이었다. 그는 용산시장 등에 자주 들러 지게꾼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빈민들이 모여살았던 난지도에서 자주 미사를 집전했고, 각 학교의 중고컴퓨터를 모아 고아원 등에 보내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개인용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특수한 워드프로세서와 다양한 전자장치를 개발하여 점자 출력이 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장비로 평가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0년 6월 한국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한국 예수회 홈페이지를 처음 제작한 것도 빌라레알 신부였다. 1994년은 인터넷 홈페이지가 일반 대중에게 상용화되시 시작한 해로, 당시까지만 해도 수도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선구적인 안목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회 제34차 총회의 원활한 진행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총회 준비위원회의 통신 책임자로서 총회가 열린 1995년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 로마에서 작성된 모든 발표문을 서강대학교 전자계산소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하는 중책을 맡았다.
컴퓨터 공학의 전문가이자 헌신적인 사도였던 그는 1996년 1월 3일, 급환으로 선종하였다.
《예수의 벗: 한국에서의 50년》참조
Fr. Felix M. Villarreal Castelazo, S.J
(펠릭스 빌라레알 신부)
1999.01.03
1945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빌라레알 신부는 입회 전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교(Iberoamericana University)에서 공학사와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1970년 9월 26일 예수회 멕시코 관구에 입회하였다.
1971년 그는 멕시코 국립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73년까지 ITESO 대학교(Guadalajara) 연구소에서 조교수 및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예수회 철학 및 신학 과정을 밟는 동시에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76년 한국에 도착하였고 1978년 여름에 사제 서품을 위한 신학 과정을 마쳤다. 이후 서강대학교 전산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하면서 1979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에도 서강대학교에서 교수 및 학과장으로 봉직하였으며, 전자계산소 소장으로서 오랜 기간 헌신하였다.
(빌라레알 신부의 첫 미사)
빌라레알 신부는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신했던 예수회원이었다. 그는 용산시장 등에 자주 들러 지게꾼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빈민들이 모여살았던 난지도에서 자주 미사를 집전했고, 각 학교의 중고컴퓨터를 모아 고아원 등에 보내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개인용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특수한 워드프로세서와 다양한 전자장치를 개발하여 점자 출력이 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장비로 평가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0년 6월 한국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한국 예수회 홈페이지를 처음 제작한 것도 빌라레알 신부였다. 1994년은 인터넷 홈페이지가 일반 대중에게 상용화되시 시작한 해로, 당시까지만 해도 수도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선구적인 안목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회 제34차 총회의 원활한 진행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총회 준비위원회의 통신 책임자로서 총회가 열린 1995년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 로마에서 작성된 모든 발표문을 서강대학교 전자계산소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하는 중책을 맡았다.
컴퓨터 공학의 전문가이자 헌신적인 사도였던 그는 1996년 1월 3일, 급환으로 선종하였다.
《예수의 벗: 한국에서의 50년》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