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 채준호, S.J.
(채준호 마티아 신부)
2012.04.01

채준호 신부는 1955년 9월 22일 출생하였다. 그는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남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하였다.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성소의 뜻을 따라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2월 23일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982년 3월 25일 첫 서원을 발하였다. 이후 1984년에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년 첫 서원)
채 신부는 인천 대건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중간 실습기 사도직을 했으며, 2년 후에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하였다. 그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Weston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볼티모어 Loyola College in Maryland에서 사목상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시기 Towson State University 상담실에서 만 4년 간을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사목과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혔다.
1990년 7월 5일 사제로 서품된 그는 Loyola College in Maryland 사목상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사도직은 ‘경청과 동반’이라는 사목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1990년 사제 서품식)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한국 예수회의 사도직과 양성에 깊이 관여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예수회 한국지구 회원 양성담당으로 봉직했으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신학원 원장을 맡아 많은 예수회원들의 양성에 영향을 미쳤다. 1999년 5월 1일 최종 서원을 발하며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1999년 최종서원식 미사)
또한 그는 서강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1995–2005)와 학생생활상담소 소장(1998–2000)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성장과 삶에 깊이 동반하였다. 이 시기 따뜻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학생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고, 사목상담과 영성 지도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삶에 잔잔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채 신부는 2000년 12월 제4대 예수회 한국지구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초대 한국관구장으로서 한국 예수회를 이끌었다. 그는 조직 운영을 넘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소와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공동체의 영적 쇄신과 사도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관구장 임기를 마친 뒤에는 애틀랜타 한인성당에서 사목하며 교민 공동체와 함께하였고, 이후 마닐라에 파견되어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양성 책임자로서 아시아 지역 예수회원들의 성장과 양성에 헌신하였다.
사목과 교육, 양성의 현장에서 쉼 없이 걸어온 채준호 신부는 2012년 4월 1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젊은 회원들에게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사제로 기억되고 있다.
Fr. 채준호, S.J.
(채준호 마티아 신부)
2012.04.01
채준호 신부는 1955년 9월 22일 출생하였다. 그는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남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하였다.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성소의 뜻을 따라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2월 23일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982년 3월 25일 첫 서원을 발하였다. 이후 1984년에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년 첫 서원)
채 신부는 인천 대건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중간 실습기 사도직을 했으며, 2년 후에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하였다. 그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Weston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볼티모어 Loyola College in Maryland에서 사목상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시기 Towson State University 상담실에서 만 4년 간을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사목과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혔다.
1990년 7월 5일 사제로 서품된 그는 Loyola College in Maryland 사목상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사도직은 ‘경청과 동반’이라는 사목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1990년 사제 서품식)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한국 예수회의 사도직과 양성에 깊이 관여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예수회 한국지구 회원 양성담당으로 봉직했으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신학원 원장을 맡아 많은 예수회원들의 양성에 영향을 미쳤다. 1999년 5월 1일 최종 서원을 발하며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1999년 최종서원식 미사)
또한 그는 서강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1995–2005)와 학생생활상담소 소장(1998–2000)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성장과 삶에 깊이 동반하였다. 이 시기 따뜻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학생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고, 사목상담과 영성 지도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삶에 잔잔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채 신부는 2000년 12월 제4대 예수회 한국지구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초대 한국관구장으로서 한국 예수회를 이끌었다. 그는 조직 운영을 넘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소와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공동체의 영적 쇄신과 사도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관구장 임기를 마친 뒤에는 애틀랜타 한인성당에서 사목하며 교민 공동체와 함께하였고, 이후 마닐라에 파견되어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양성 책임자로서 아시아 지역 예수회원들의 성장과 양성에 헌신하였다.
사목과 교육, 양성의 현장에서 쉼 없이 걸어온 채준호 신부는 2012년 4월 1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젊은 회원들에게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사제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