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 박고영, S.J.
(박고영 토마스 신부)
2014.04.26

박고영 신부는 1919년 2월 26일 출생하였다. 그는 안성공립초등학교와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대신학교에서 철학 2년과 신학 3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예수회원의 성소를 품은 그는 1941년 4월 22일 일본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1943년 4월 첫 서원을 발하였다.
이후 그는 일본 죠치대학교에서 철학을 수학하고, 1947년 로마로 건너가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1950년 7월 7일, 두 번째 한국인 예수회 사제로 서품되면서 본격적인 사도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고영 신부는 예수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서강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7년 한국의 주교들은 한국에 가톨릭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요청하기로 교황청에 결의하였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이듬해인 1948년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연합(UN) 회의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던 장면 박사에게 로마를 방문해 교황 비오 12세와 면담하고, 한국 가톨릭 고등교육기관 설립에 관해 논의해 볼 것을 요청하였다.
비슷한 시기 연학을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던 박고영 신부(당시 수사)는 예수회 총장 얀센스 신부(John Baptist Janssens, S.J.)를 만날 기회를 가졌고, 예수회의 한국 진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로마에 도착한 수일 후(1947년 11월 초순경) 나는 예수회 총장이신 Johannes Janssens 신부님을 알현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때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한국에는 가톨릭 신도 수도 일본보다 많고, 앞으로 유망한 포교지이니 예수회가 한국에 진출해 활동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총장께서는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며, 어떤 나라 사람이 한국에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까지 물어보셨다.”

(교황 비오 12세 알현에 앞서, 왼쪽 첫 번째가 박 신부이고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장면 박사이다)
박 신부는 1954년 독일 뮌스터에서 제3수련을 마치고,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 밀워키에 위치한 마켓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8년 8월 15일에는 최종 서원을 하며 예수회원으로서 완전한 헌신을 서약하였다.
1960년부터 그는 서강대학교 개교 초기 교수로 합류한 열 명의 예수회원 교수진 가운데 한 명으로 재직하며 철학 교육의 기틀을 세웠다. 조교수(1960–1964), 부교수(1964–1972), 교수(1972–1984)를 거치며 20년 이상 교단에 섰다. 이 시기 그는 그레고리안 대학교로 돌아가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1968–1970)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문과대학장,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서강대학교 인문학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박 신부는 단지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과 영성을 함께 이끌어낸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다. 명확하고 깊이 있는 강의로 학생들에게 사고의 틀을 넓혀 주었으며, 조용하고 단단한 인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1991년에는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한편, 이런 강단에서의 활동 외에도 그는 아퀴나스 교회음악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1995–2009)하며 음악과 영성을 잇는 다리를 놓는 일에도 헌신했다. 전례음악에 대한 박고영 신부의 관심은 그가 소신학교에 다니던 열세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대축일에 명동성당에서 복사를 서면서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후 프랑스인 보댕 신부로부터 약 1년간 오르간 연주를 배우면서 전례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갔다. 그는 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음악 활동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1967년에는 아퀴나스 합창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서강대학교의 역사적인 첫 졸업식에서 교가 지휘를 맡은 것도 박고영 신부였다.

(아퀴나스 합창단을 지휘하는 박고영 신부)
말년에 그는 성 이냐시오의집에 거주하며 후배 예수회원들과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긴 세월 학문과 신앙, 그리고 교육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온 박고영 신부는 2014년 4월 26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국 예수회 초창기 세대의 일원으로서, 예수회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었다.
《예수의 벗: 한국에서의 50년》참조
Fr. 박고영, S.J.
(박고영 토마스 신부)
2014.04.26
박고영 신부는 1919년 2월 26일 출생하였다. 그는 안성공립초등학교와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대신학교에서 철학 2년과 신학 3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예수회원의 성소를 품은 그는 1941년 4월 22일 일본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1943년 4월 첫 서원을 발하였다.
이후 그는 일본 죠치대학교에서 철학을 수학하고, 1947년 로마로 건너가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1950년 7월 7일, 두 번째 한국인 예수회 사제로 서품되면서 본격적인 사도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고영 신부는 예수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서강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7년 한국의 주교들은 한국에 가톨릭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요청하기로 교황청에 결의하였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이듬해인 1948년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연합(UN) 회의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던 장면 박사에게 로마를 방문해 교황 비오 12세와 면담하고, 한국 가톨릭 고등교육기관 설립에 관해 논의해 볼 것을 요청하였다.
비슷한 시기 연학을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던 박고영 신부(당시 수사)는 예수회 총장 얀센스 신부(John Baptist Janssens, S.J.)를 만날 기회를 가졌고, 예수회의 한국 진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로마에 도착한 수일 후(1947년 11월 초순경) 나는 예수회 총장이신 Johannes Janssens 신부님을 알현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때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한국에는 가톨릭 신도 수도 일본보다 많고, 앞으로 유망한 포교지이니 예수회가 한국에 진출해 활동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총장께서는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며, 어떤 나라 사람이 한국에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까지 물어보셨다.”
(교황 비오 12세 알현에 앞서, 왼쪽 첫 번째가 박 신부이고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장면 박사이다)
박 신부는 1954년 독일 뮌스터에서 제3수련을 마치고,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 밀워키에 위치한 마켓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8년 8월 15일에는 최종 서원을 하며 예수회원으로서 완전한 헌신을 서약하였다.
1960년부터 그는 서강대학교 개교 초기 교수로 합류한 열 명의 예수회원 교수진 가운데 한 명으로 재직하며 철학 교육의 기틀을 세웠다. 조교수(1960–1964), 부교수(1964–1972), 교수(1972–1984)를 거치며 20년 이상 교단에 섰다. 이 시기 그는 그레고리안 대학교로 돌아가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1968–1970)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문과대학장,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서강대학교 인문학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박 신부는 단지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과 영성을 함께 이끌어낸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다. 명확하고 깊이 있는 강의로 학생들에게 사고의 틀을 넓혀 주었으며, 조용하고 단단한 인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1991년에는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한편, 이런 강단에서의 활동 외에도 그는 아퀴나스 교회음악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1995–2009)하며 음악과 영성을 잇는 다리를 놓는 일에도 헌신했다. 전례음악에 대한 박고영 신부의 관심은 그가 소신학교에 다니던 열세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대축일에 명동성당에서 복사를 서면서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후 프랑스인 보댕 신부로부터 약 1년간 오르간 연주를 배우면서 전례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갔다. 그는 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음악 활동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1967년에는 아퀴나스 합창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서강대학교의 역사적인 첫 졸업식에서 교가 지휘를 맡은 것도 박고영 신부였다.
(아퀴나스 합창단을 지휘하는 박고영 신부)
말년에 그는 성 이냐시오의집에 거주하며 후배 예수회원들과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긴 세월 학문과 신앙, 그리고 교육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온 박고영 신부는 2014년 4월 26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국 예수회 초창기 세대의 일원으로서, 예수회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었다.
《예수의 벗: 한국에서의 50년》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