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emoriam

선종한 예수회원


Fr. Christopher A. Spalatin, S.J. (신성용 신부)

Fr. Christopher A. Spalatin, S.J.

(신성용 신부)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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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용 신부는 1940년 12월 1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태어났다. 그가 네 살이 되었을 무렵 온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 안에서 성장한 그는 마켓 고등학교를 거쳐 1958년 9월 14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960년 첫 서원을 발한 그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학사(1959–1963)와 석사(1964–1965) 과정을 마쳤다.

1965년, 젊은 연학 수사였던 그는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당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강사로 활동하며,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육자의 길을 시작했다. 1968년 미국으로 돌아가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하고 1971년 6월 9일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이후 197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7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신성용 신부는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철학과 영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학생들과 나누었다.

1977년 5월에는 몇몇의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M.E.(Marriage Encounter) 운동을 시작하였다. M.E.운동은 이후로 한국에서 계속해서 활성화 되었고 1981년에는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3000석의 좌석을 가득 메우고 성황리에  M.E. 5주년 기념식을 갖기도 했다.

특히 1980년부터 2006년까지 개설된 ‘결혼준비특강’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3대 필수과목’으로 불릴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는 이성 교제와 결혼, 성,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열린 태도와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갔고, 이 강의는 수많은 동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의 수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고 성숙한 인간 관계와 책임 있는 사랑을 배우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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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강대학교 사제관에서)


신성용 신부는 학문적 활동뿐만 아니라 예수회 공동체 안에서도 헌신적인 봉사자로 살았다. 수련원 부수련장(1985), 신학원 원장(1986–1992), 성이냐시오의 집 원장(1995–2006) 등을 역임하며 공동체를 돌보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특히 철학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예수회원들의 지적·영적 양성에 깊이 관여했고, 영적 지도와 사제 상담에 헌신하며 많은 이들의 신앙 여정을 동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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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예수회 신학원에서)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그는 서강대학교 국제교류 총장보로 활동하며 외국인 학생들을 맞이했고 마닐라 Arrupe International Residence에서도 영적 지도를 이어갔다. 마지막까지 그는 공동체 안에 머물며 많은 이들의 영적 쉼터가 되어 주었다.

2016년 7월 4일, 신성용 신부는 75세의 나이로 하느님 품에 들었다. 그의 죽음은 조용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수많은 학생과 후배 사제, 그리고 함께했던 동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