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이냐시오포커스_simple web.jpg

 

 

[이냐시오포커스] 이근상 시몬 신부의 영신수련 에세이 4 - 늘 같은 시작기도로

2020.05
13

본문

이냐시오포커스 필진 -로고4회-04.jpg

늘 같은 시작기도로...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은 언제나 똑같은 하나의 기도로 시작한다. 주님 제가 드리는 이 모든 의향과 행위와 마음의 움직임이 오로지 당신을 향한 찬미와 봉사가 되게 하소서!” 기도 중에 일어나는 모든 심적영적 현상이 당신만을 향하게 해달라는 간청이다. 이는 가뭇하던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보여달라는 욕구도, 뭉개진 소리를 보다 분명하게 듣게 해 달라는 마음도 모두 뒤로 놓는 행위다. 보이지 않는 깜깜함도 들리지 않는 막막함도 무엇이든 좋으니 기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또한 일어나지 않는 모든 것까지 당신께로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게 해 달라는 간청이며 결심이다.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들리는 것들리지 않는 모든 것이 다 당신께 향하는 길way이라는 선언이며, 일어나는 모든 것이 마치 내 사랑하는 아기처럼 모든 것이 숨막히게 좋다는 마음을 일깨우는 소리다. 우리는 시작기도로 눈과 귀, 곧 온 마음으로 기도 내내 깨어있겠노라 다짐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과 간청이지만 문제는 그 간절함이 우리의 관성, 곧 보고 만지고픈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데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당신께 다가가는 이의 간절함은 외려 작은 것이라도  보여주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들려주시기를 내밀하게 간직한다. 애절하게, 영신수련 안에서 우리는 마치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나가는 이의 심정이 되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소스라친다. 그 분의 현존을 감지하려한다. 모든 것을 맡겼으니, 사실 마음의 배고픔은 더 깊고, 깊다. 그러니 영신수련의 관상이란 무엇인가를 반드시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며, 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백 번을 배운다 한들, 우리의 본능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볼 수 있기를 염원한다. 영신수련이 힘들다고 한다면 이 배움과 본능사이, 현실과 희망 사이의 텅빈 공간,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아무리 비운다 해도, 사랑하는 이가 없는 자리는 서운하고, 어찌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가 채워야할 이 빈자리를 빈자리로 놓고 기다리는 일은 고문이다.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약속 자리에 나갔으나 매번 헛탕을 치고 돌아오는 이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나가서 매일 한 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이 영신수련이라면, 영신수련은 참 기괴한 기도법이다. 차라리 만나리라는 희망따위없이 바쳐야 할 바를 충실히 바치는게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훌륭한 기도가 아닐까? 병든 관계처럼, 그렇게 영신수련 속 우리는 빈 자리에서 하릴 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친 영혼은 무엇인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애를 쓴다. 하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은 이 지루한 싸움에서 지치기 마련.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기도를 그만두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착한 영적 동반자들이 참을성있게 기다리라며 권고하고 격려하지만 진지하게 기도하려 뛰어들 수록, 기도 속 세계는 잡기 힘든 마음 속 세계. 싸우러나간 전선은 매 순간 바람처럼 흩어졌다 저멀리서 다시 쌓이는 성채처럼 정처가 없다. 난공불락. 

 

늘 같은 시작기도는 바로 이 실망한 마음이 다시 한번 분발하여 향하는 한결같은 희망이다. 시작기도는 관상의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가르쳐준다. 기도 안에서 보고 들어야 할 바는 모습이나 소리, 의미나 깨달음이 아니라 무엇이 있건, 아무 것도 없건, 잡념이건, 집념이건, 소리없음이건, 소란이건, 이 모든 것, 바로 지금 이 기도 속에서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계신 그 분이란 사실. 이 모든 어수선 속에서 언제나 계신 그 분을 감지하는, 아니 계시다고 믿는 마음. 허술하고 허약한 믿음 속에 계신 겸손하고 가난하신 그분의 마음을 듣고 보겠다는 다독임. 시작기도는 뭘 잡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수록 더 애틋한 그의 존재를, 잡지 않겠노라 결심하고, 잡을 수 없노라 고백하는 경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삶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늘 낯선 땅으로 모르는 길을 떠났다. 관상기도는 사실 듣지 않아도 족하고, 보지 않아도 족하다. 흐릿해도 가물거려도,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아무 말도 이해할 수 없느며,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아이의 눈과 귀그 마음에 보이고 그 마음에 들리는 소리들. 내 가진 모든 것이 그저 다 사랑인 아이의 마음. 그렇게 온전한 신뢰로 세상을 보는 마음은 상처받기 쉽고 무너지기도 쉽다방패나 창을 들고 선 상태가 아니기에, 누구의 공격에도 위험하고 연약하다갑옷을 칭칭 둘러도 위태한 이 험한 세상에서 옷을 다 벗은 상태, 아기로 있는 일이라니. 그 가볍디 가벼운 무기는 주님 제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당신의 허락을 받았은 선물이니. 주님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을 향한 길이 되게하소서. 영신수련의 시작기도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단순한 사실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