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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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의 수도자 일기 3 - "본질의 비유"

2020.04
0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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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의 비유

 

나는 여태 어느 죽음 앞에 서 있다.

윤지헌 도미니코. 2016년 10월 생. 지난 달, 만 4살의 생일을 보지 못하고 내 앞에서 주님께 돌아갔다. 아이 아빠에게 연락이 온 것은 사순시기를 속절없이 책망하며 보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일상에서, '이래도 되나..' 할 때가 바로 이러면 안되는 때임을 알아 차리는 혜안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 그토록 '이래도 되나' 라는 그 질문 앞에서 반항 한번 못해보고 질질 끌려 다니며 있을 때 아이 아빠의 전화는 나에게 어떤 예리한 충격파를 던져 주었다. 아이 아빠는 17년 전 서강대학교 교리반에 만난 인연이 전부이니, 그의 연락은 그 자체로 나에게 사건이었다.

“아이가 죽게 되었어요. 함께 해 주세요...”

이 절박한 음성은 성경에서 여러번 들어왔다. 예컨데, 회당장 야이로의 절박한 이 음성을 우리는 마르코 복음을 통해 익히 들어왔고, 곧이어 혈루증 환자와의 조우로 지체하시는 예수님을 때론 덤덤하게 지켜보았다. 이윽고 아이가 죽었음을 전해들었을 때에 우리는 다시 드라마틱한 예수님 기적사화의 스토리텔링으로 빠져 들며 이내 절대자의 파워 앞에서 건조하게 무릎 꿇곤 한다. 하지만, 방금 전해 들은 아이 아빠의 이 절박한 음성은 나를 삽시간에 죽음이라는 본질 앞에 서 있게 했다. 본질(essence)의 어원은 없지 아니하고 '있는(esse;be)'것에서 출발하는, 이른바 존재 기반의 사유이며 제1철학이기도 하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있음' 앞에서 어찌 이토록 철 없이 '죽음'이 없는 듯 살아왔을까. 사순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바로 이 '죽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이 '있는 죽음'이 '없는 사망'으로 변하는 거룩한 변모를 우리에게 보도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서 전하는 빈무덤에 관한 비유이며, 여기서 말하는 비유는 본질을 인간의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조건인 한에서 가장 본질에 가까운 형태라는 뜻이다.

나는 그날, 아이 앞에 서 있었다. 아이 부모의 바람대로 나는 아이에게 내 세례명을 따서 도미니코라고 세례를 주었고 세례수가 아이의 투명한 이마 위로 흐를 때 나의 눈물이 더해져 세례수와 섞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 '섞임'이 어떤 본질적인 연대의 비유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아이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주위로 드리워진 여러 죽음 앞에서 무기력했고 이 무기력은 그간 일상에서 써 왔던 다른 영역의 힘,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의지라고 부르는 '자의식'이 죽음이라는 본질 앞에서 얼마나 예의 바르지 못했는가에 대한 성찰로 아이 앞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이와 내가 대면한 그 커튼 안 공간이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평화와 고요함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 눈을 뜨자 죽음 앞에 선 이가 갖기에는 예사롭지 아니한 어떤 충만한 기쁨 가운데 머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새근 새근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세례수가 마르지 않은 채로 투명하게 맑은 아이의 이마 위에서 뭔가에 열중하는 아이가 흘리는 땀처럼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귀에 내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도미니코, 이 짧은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세상의 실수를 용서해 주어 고마워...”

나는 지금 내 마음을 맴돌고 있는 본질적인 이 평화가 아이의 화해에 기인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화해는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귀에 속삭인 세상의 실수, 곧 아이의 생명을 놓쳐버리고 만 세상의 실수에 대하여 아이가 용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와 나, 이렇게 단 둘이만 있는 중환자실의 이 커튼 안의 공간은 마치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장막 안에서 이 장막 밖의 세상에 대해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사제의 절박한 호소를 떠올리게 했다. 중환자실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꼭 전해 달라는 말을 다시 한번 나는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이말은 영원히 봉인되어 아이의 마음 속에 남아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꼭 열흘 뒤, 아이는 내가 함께 옆에 있는 가운데 평화로이 세상을 떠났다. 아이 옆의 의료 장비들이 의료진에 의해서 거두어 질 때 인간적인 슬픔이 복받쳐 올라와 민망하게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할 수록 너무나도 명백하게 내 앞에서 펼쳐지는 완전하기 짝이 없는 '있는 죽음' 앞에서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성모님을 불렀다. 그리고 거의 고요에 가까운 침묵이 십자가 위에서 울부짖던 주님의 음성을 떠올리게 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태오 27,46)

아이는 그렇게 나와의 짧은 만남을 선물처럼 주고 떠났다. 나는 내 손 안에서 서서히 그 체온을 잃어가던 아이의 고사리같은 손의 온도를 기억한 채 밤 늦게 공동체로 돌아왔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와 새벽녘으로 치닫는 성곽길을 걸었다. 경황이 없이 거리로 나온 까닭에 웃옷을 걸쳐 입는 걸 잊은 채로 나온 탓에 아직 새벽녘의 기온은 쌀쌀했다.  그러나 내 손안에 여전히 감지되는 식어가는 어떤 존재의 온기가, 꺼져가는 불씨를 간신히 보호하고 있는 간절함 마냥 내내 지켜지고 있었던 덕에 나는 몸을 잔득 움추린 채로 미친사람처럼 어두운 서울 성곽길을 걸었다. 이제 제법 흐드러진 봄꽃들의 살랑임이 가로등 불빛에 건듯 시야에 들어올라치면, 어떤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본연적인 비유처럼 비춰져서 그렇게나 한참 올려다보며 생애 처음으로 아이의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

나는 사제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생명에 관한 복음의 비유를 알지 못한다.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나는 여전히 이것을 믿는다. 신앙의 핵심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신비'라는 영역에 머물고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올바른 장소에서 찾고자 하는 인간적인 분투와 노고를 겨냥한다는 것을. 그리고 신비가 머물 이 '올바른 장소'란 바로, 내가 무지하여 알수 없다는 고백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사순시기를 관통하며 나에게 이 무지의 장소가 수치스러운 불신앙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순연하게 내가 알 수 없음을 고백할 때 역설적으로 좁혀지는 주님과의 격차를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곳이라는 사실을, 뿐만 아니라 이 무지의 고백 자체가 '신비'를 담지하게 되는 본질의 비유라는 사실을 나는 아이로부터 배웠다.

 

다음날, 아이의 부모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나비처럼 날아갔지만, 그 날개의 흔적아래로 꽃이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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