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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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포커스]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의 수도자 일기 2 - "흙의 하강"

2020.03
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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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하강

 

간밤의 꿈에 누군가와 함께 '생명의 흙'을 발굴하는 현장에 있었다. 죽음 투성이인 주변의 환경 속에서 그이와 나는 밤새도록 그 '생명의 흙'을 고르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다하여 비로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흙이 모아졌지만 한줌 뿐이었다. 노고에 비해 적은 흙의 양에 대한 실망 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터져나오는 환희로 그 한줌의 흙을 소중한 용기에 담았다. 불순물이 섞여 들지 않도록 봉인 한 후, 나는 그이와 함께 어떤 숭고한 마음을 품고 '생명의 흙'을 위를 향하여(anablepso; 루카 19,5 참조) 옮기고 있었다. 그때, 흙을 위로 운반하면서 나는 분명 어떠한 발돋움을 한 것 같은데, 이 발돋움은 나에게 찰나의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아주 구체적인 몸의 언어로 상승의 가능성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그 모습 자체가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숭고함을 경험하는 모든 생명체는 제 육신으로 그 고귀함의 본질을 닮아 위를 향한다. 곧 자발적으로 자기가 확장되어 발돋움하는 설렘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때의 발돋움은 영혼 전체의 고양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이제, 막 그 봉인된 '생명의 흙'이 마땅히 위로 봉헌되듯 옮겨지려는 순간, 아뿔사. 그만, 흙의 용기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용기를 든 손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심연으로 곤두박질 치는 흙의 하강은 아주 순간이었지만, 아득한 인류의 모든 하강의 역사를 유비적으로 담아내는 역설의 순간이기도 했다. 동시에, 아마 신의 강생이 이러한 모습이리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명의 하강. 순간, 산산 조각이 나는 흙의 용기와 함께 오염된 주변의 죽음의 흙 속으로 생명의 흙들이 쏟아졌고 그렇게나 쉽고 허망한 죽음에 오염이 되어 삽시간에 소용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 흙. 그리고 그 죽음의 흙 속에서 아기가 태어났고 그 이름은 아마르티아(Amartia)라 불렸다. 곧 빗나감이었다.

 

다음날은 재의 수요일이었다. 재를 머리 위에 얹고 천근만근 무거워진 머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성당에 앉아 간밤의 꿈에 대한 묵상으로 기도를 열었다. 처음에는 연일 갱신되는 전염병의 감염자 숫자에 의식이 겁먹은 듯 좀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온통 염려과 두려움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픈이들에 대한 연민과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속절없는 죄책감이 한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순식간에 어떤 결곡한 힘에 의해 압도당하는 과정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힘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한 없이 관대해서 그 짧은 순간에 나를 온전히 길들였다. 내 영혼을 쓸어내리는 그 부드러운 촉감에 경도되어 오히려 몸이 움찔했다. 누군가 절대의 힘이 나를 쓰다듬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뭔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이유도 없는 이유가 유일한 이유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이유로 타자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지극한 정성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라는 절대 타자를 향해 아무런 이유를 가지지 아니하고 끊임없고 한결같이 다가오는 이 사랑이라는 정성의 목적은 구원이리라. 이 사랑이라는 거룩한 기운은 내 안에 담기기를 끊임없이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그 사랑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자격 없음이라는 수치심이 이렇듯 나를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George Herbert 의 <사랑 III> 이라는 시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당신을 쳐다수가 없답니다.

그러자, 사랑이 나의 손을 잡으며 미소짓고는 이렇게 물었지

그 부끄러운듯 쳐다볼 수 없다는 당신의 눈을 누가 만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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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우중 SJ


기도 안에서, 내 영혼은 용기를 내었다. 이 수치스러움에 도저히 당신이라는 광채를 쳐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물러서고 마는 '빗나감'을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마침내 그 관대한 힘을 받아들였고 얼마간 내 깊은 심연의 죽음의 공간을 맴돌던 기운은 마침내 새로이 '생명의 흙'을 발굴하고 있었다. '나'라는 죽음의 심연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그분을 보는 것이 파스카이다. 나는 조금 더 나를 내어 놓았고 죽을 힘을 다해 내 모두를 그 기운에 내어 드렸다. 그럴수록 진홍빛 같은 내 죄의 본연이 드러나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 나를 그로부터 벗어나도록 유혹했지만, 그보다 훨씬 상회하는 은총의 빛 속에서 나는 그 엄청난 추락을 견뎌냈다. 이 짧은 시간동안 나는 로고스의 육화와 이어지는 강생의 신비 그리고 광야에서 유혹받는 그리스도의 일생이 내 안에서 말씀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거부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의 추락은 마치 모든 행성들의 자전의 주기로부터의 해방처럼 여겨졌고, 은하계의 협소한 질서감으로부터 오로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강하는 어느 운석의 속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속도감의 광휘로 빚어지는 것은 흙에서 온 인간의 본래 육화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때 나는 부끄럽지만 내 일생에서 최초로, 영신수련의 강생의 신비를 내 몸으로 육화되어 추락하는 그 거룩한 기운과 일치하여 경험하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나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여기 인간이 있었다.

흙이 하강했지만 영혼의 상승을 고대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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