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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포커스] 이근상 시몬 신부의 영신수련 에세이 2 - 영적 위로

2020.02
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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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위로

 

 

왜 기도할까? 수많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맛보고픈 갈망이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고픈 바람은 거룩하다. 특별히 영신수련 피정을 다소간에 맛 본 이들에게 위로는 더군다나 간절한 바람이다. 기도 성찰 동안 피정자는 거듭 묻는다. 지금 나는 영적위로에 있는가? 바람이기도 하지만 숙제 같기도 한 영적 위로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영적 위로와 영적 실망은 이냐시오 용어다. 다시 말해서 통상적인 의미와 결이 다른 독특한 뜻을 지닌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먼저 영적 위로와 실망은 심적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좋고 따뜻한 감정이나 불쾌하고 차가운 감정이라는 어떤 순간의 고정된 하나의 심적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 그것도 움직이는 방향을 지칭하는 영성용어다. 한마디로 영적 위로는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마음이고, 영적 실망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는 마음이다. 그러니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차갑고 외로운 십자가 상 예수님의 마음은 인간적인 감정 상태로 보자면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아드님의 한없는 실망상태, 곧 감정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절망적 고통이지만, 예수님은 그 극심한 외로움과 차가움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생생하고 간절하니 영적 위로의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예랄 수 있다. 절망적 위로랄까? 반면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님을 서로 넘겨주며 우정을 확인한 대목에서 우리는 세상의 위로와 영적 실망의 극단적인 예를 본다. 피차 한편이 되어 따뜻한 안도를 느끼는 상태, 심적 상태로 보면 따뜻함이 감도는 포근한 정경, 그러나 하느님을 내 버리는 영적 실망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영적 위로 안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하고, 영적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느님께로 더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니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이 움직임들, 영적 위로와 실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들은 식별의 대상이지 손아귀에 쥘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특별히 영적 위로는 근본적으로 성취물이 아니라 주어지는 선물이다. 영적 실망의 경우는 약간 복잡한데, 때때로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허락하시는 시련이기도 하고, 우리의 허술하고 방심한 선택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불러오는 삶의 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적 위로에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또 영적 실망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실망할 일이 아니다. 그저 눈을 뜨고 우리 자신이 해야할 바를 힘써 해 나가며 기다려야 할 때라면 기다리고, 일어나야 할 때라면 일어나야 할 뿐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 영적위로란 해서 부서지고 낮추어진 마음이다. 가난한 마음, 당신이 아니면 이 시간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마음, 그렇게 당신을 향한 간절함이다.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할 수 없는, 아니 절망스러운 자, 당신의 빈자리로 견딜 수 없는 그리움과 애닳음에 끓는 자가 돌릴 수밖에 없는 삶의 방향이다. 그 미칠 것 같은 몸부림이 고개를 돌려 잠잠히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 그러니 우리의 본성은 영적 위로로 초대하는 삶의 수많은 계기들, 그 실패들, 상실을 피하려 무진장 애를 쓴다. 어쩌면 기도주제를 채우는 것들이란 우리를 영적 위로로 이끌어줄 삶의 초대를 제발 없애달라는 간청일지도 모른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간청들에 주님은 바로 그 어둡고 축축한 땅, 그곳이 열배 백배의 열매가 가능한 좋은 땅이라 말하신다. 반짝이는 돌밭도, 한 길도 아닌 지하 속. 우리 삶은 좋은 땅을 피하려 얼마나 애를 써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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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신다. 담담하고 망연한 외로움으로 초대하시며 당신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가난을 주신다. 그리운 이를 저기에두시어 당신이 아니라면 희망조차 꿈꿀 수 없는 가난을 주신다. 주님이 필요한 삶. 당신이 아니라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이 허술하고 허약한 삶은 영적 위로를 만나는 가장 좋은 땅이다.

 

많은 이들이 영적 위로 안에 있으나 참 위로를 모르고, 많은 이들이 영적 실망 안에 있으나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며 죽어가고 있다. 기도란 깨어나는 일. 위로를 위로로 만나고 실망을 실망으로 만나는 일. 식별은 눈을 뜨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주님을 조금 더 그리워하며 발견하는 일이리라 믿는다. 대부분은 지금 여기 주님의 위로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2020년 2월 영신수련 에세이 

이근상 시몬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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