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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ES리포트] 예수회 사회정의 및 생태사무국 50주년 기념회의 : 공동합의성이라는 새로운 도전 (김민 S.J. 신부)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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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합의성이라는 새로운 도전: 예수회 사회정의 및 생태 사무국 50주년 기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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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회원이라도 the Secretariat for Social Justice and Integral Ecology(SJES)라는 부서에 대해서 잘 모른다. 심지어 사회 사도직에 종사하는 이들조차도 그렇다. 현재 우리가 예수회 사회정의 및 생태 사무국이라고 거칠게 번역하는 이 부서는 이래봬도 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금년 50주년을 기념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관구에서 흔히 부르는 말로는 로마 총원 사회 사도직담당이라고 하는 이 부서는 사실 꽤 중요한 일들을 해냈다. 그중 하나가 Promotio Iustitiae라는 저널을 발간하면서 사회 사도직의 이론적인 틀을 착실하게 쌓아왔던 것이다. 그 성과는 부서진 세상 치유하기예수회 사회 사도직의 특성’, ‘이냐시오 영성과 인권옹호라는 제목을 단채 단행본으로 각각 출판되었다. 한국 관구에서도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에서 번역본을 발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회 한국관구의 예수회원 상당수가 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SJES라는 부서도 잘 모르고, Promotio Iustitiae라는 저널도 잘 모르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세권의 책도 잘 모른다. 그러니 아무리 50주년을 기념한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기는 어려울 판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지도가 바닥을 치더라도 사회사도직이 예수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혹은 최소한 베드로 아루페 신부님 이후 예수회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예수회원은 없을 것이다. 대단한 역설이다. 대단히 중요한데 막상 대단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역설.

 

현재 이 낯선 부서를 이끄는 사람은 제비에르 제야라즈 신부이다. 인도 예수회원이다. 이 분은 꽤 자주 아시아 태평양을 방문하였다. 얼마 전에도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사회사도직 모임에 참석해서 이 행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는 주문을 했다. 지난 50년 동안 사회사도직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축하하고 감사하는데 달랑 로마에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제비에르 제야라즈 신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 한국관구에서도 1122일 예수회 사회사도직 5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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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114일부터 118일까지 5일에 거쳐서 진행되었다. 예외적으로 긴 기간이었고 매일 매일의 일정 역시 강의와 나눔으로 점철된 강행군이었다. 특히 나눔이 매우 강조되었는데, 이는 보편적 우선적 선택의 과정에서 강조된 공동식별과 영적 대화의 흐름을 준용한 결과였다. 사실 예수회의 회의 방식은 2017년 말을 기준으로 판연하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나눔, 다시 말하면 개인 성찰과 그 성찰에 기반한 나눔이 매우 강조되기 시작하니까.

 

강의 혹은 인풋은 첫날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보편적 우선적 선택의 흐름을 따르고 있었다. 첫날에는 예수회 사회정의 및 생태 사무국 만큼이나 그 존재감이 애매한 바티칸 통합적 인간 계발 부서의 장관인 턱슨 대주교와 이번에 새로이 추기경이 된 마이클 처니 추기경이 강의를 맡았다. 원래 첫 발제는 명사에게 맡기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정말이지 복불복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아주 흥미로웠다. 대체 통합적 인간 계발이라는 알쏭달쏭한 타이틀이 교회 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발제였는데 굉장히 명료하게 19세기 교회의 사회교리의 맥락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왜 교회가 IHD, 혹은 integral human development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을 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은 가장 미천한 인간이라도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예수님의 기적은 바로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러한 미천한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우리는 큰 숙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짐작이 될 것이다. 왜 통합적 인간 계발 부서에 이주와 난민 섹션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그들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자기 성취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고, 따라서 교회는 2천년전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이들을 도와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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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슨 대주교의 뒤를 이어서 마이클 처니 추기경과 팟치 알바레스 신부 (제비에르 제야라즈 신부의 전임자)가 예수회 내의 사회사도직 흐름에 대해서 중요한 발제를 했다. 뜻밖에도 알바레스 신부는 베드로 아루페 총장 이전 얀센 총장 시기에 이미 사회사도직을 위한 공간이 예수회 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다음으로는 보편적 사도적 선택의 흐름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동반하는데 있어서 생태적 위기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교회 밖에서 SDGs, 즉 지속가능한 발전목표가 얼마나 우리에게 큰 이정표가 되는지, 등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이 때 꽤 흥미로운 토론도 있었다.-사실 이런 류의 토론이야말로 회의의 묘미이기도 하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의 제프리 작스 Jeffrey Sachs의 아주 깔끔한 발제-요지는 현재 군사비나 이런 부분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만을 전용해도 유엔의 SDGs의 상당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 제이비어 Joe Xavier 신부(이전 JRS 담당. 현 인도 방갈로어 Indian Social Institute 책임자)는 과연 경제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예컨대 SDGs의 목표 중의 하나인 기초교육 제공을 만약 달성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체제 속에서는 기초교육을 마친 또다른 빈민계급이 형성될 뿐이라는 것이다. 즉 빈곤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선 복잡한 것이고, 빈곤이 갖는 풍요로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논의의 한 축이고, 다른 한축은 그렇다고 빈곤을 낭만화할 수는 없으며 요지는 세계적 관점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문제제기였고, 작스 교수와 조 제이비어 신부는 전문가다운 태도로 서로의 논의가 갖는 장점을 수긍하는 모습으로 모두를 흐믓하게 했다. 속으로야 좀 사정이 다르겠지만.

 

이밖에도 꽤 불꽃같은 논쟁도 있었고 아름다운 강의도 있었다. 민주주의가 과연 여전히 유효한가에 관한 엄청나게 논쟁적인 주제와 마약중독자와 함께 하는 노사제의 고백적인 나눔이 한편으로 지적인 짜릿함과 또 다른 한편에서 정서적인 울림을 선사했다. 꽤 흥미로운 회의였고 분명 풍요로운 나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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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길고 긴 로마에서의 회의 마지막에는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주의력을 잃어버리고 지친 모습이 완연했다. 하지만 마지막 제비에 제야라즈 신부가 등장하여 지금까지의 여정을 평가하는 시간은 다시금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잡다하기까지한 수많은 논의들을 매우 깔끔하게 요약하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여전히 회심의 과정 conversion process 속에 머물러야 한다. 이 회심의 과정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우리를 계속되는 쇄신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몇몇 예수회원들이 미친듯이 논쟁했던 활동과 현존 사이의 긴장 tension between being and doing은 매우 긍정적인 긴장으로, 우리를 새로이 갱신시킬 것이기에 그렇다.

-이제는 협력에 대해서 실천할 때이다. 무슨 말이고 하면, 사회사도직과 다른 영역들 사이의 협력에 대한 논의를 뒤로 하고 공통의 지점을 찾을 때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회심의 과정은 우선 당장 우리 자신의 변화를 촉구한다. 그 변화는 일차적으로 우리 태도가 짜증날 정도로 완고한 태도에서 부드러움의 태도 tenderness로의 변화이며, 또 그만 말을 하고 경청하는 자세로의 변화이다. 경청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는 이들, 양성기 예수회원들, 무엇보다 성령께서 건네는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우리의 이야기의 나눔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공동합의성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위에서 결정해서 밑에서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보편적 사도적 선택의 과정에서 했듯이 함께 공동으로 식별하면서 합의를 이루어내는 공동합의성synodality의 자세가 필요하다.

 

두가지의 새로운 요점을 발견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합의성에 대한 강조. 사실 공동식별이라는 우리의 습관(혹은 습관이 되어야할 것)과 원칙(혹은 원칙이 되어야할 것)은 바로 공동합의성에 도달하는 통로가 된다. 마치 영신수련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의 도구가 되듯이. 다음으로는 좀 뜬금없지만 예수회 내의 여성의 자리에 대해서. 이 부분은 아르투로 총장의 개막 연설에서 예고된 것이었고, 실제로 회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르투로 소사 총장은 여성 참석자들과 따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부분은 그동안 예수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회심하고 변화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김민 사도요한 S.J.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부소장)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9-11-20 14:04:14 관구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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