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방한리뷰] 총장신부님의 그림자 - 김우중 스테파노 S.J. (총장 방한 촬영 담당)

2019.08
20

본문

< 총장신부님의 그림자 >

 

 

IMG_3278-2.jpg

 

 


 

“You are my shadow.”

 



총장신부님이 방한하신 지 삼 일째 되었을 즈음 신부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마치 그림자처럼 그분을 따라다녔다.

 

나는 지금 예수회 필리핀 관구가 운영하는 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올 초 총장신부님의 한국 방문이 확정되었을 때 관구장 신부님께서 한국에 와도 좋다고 초대해주셨다. 총장신부님을 직접 뵐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1년여의 필리핀 생활 중에 잠시나마 한국에 다녀올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러나 들뜬 마음도 잠시, 부관구장 신부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총장신부님 방한 기간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한국에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냐는 생각에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총장신부님의 엄청난 일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든 공식일정에 나도 함께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나고 싶었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시간을 가늠해보니 딱 가족들과 예수회 형제들, 그리고 친구 한두 명 정도만, 그것도 잠시 얼굴만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그 순간 총장신부님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요 며칠뿐이지만, 그분에게는 한국에 이어 곧바로 마카오, 홍콩, 대만, 일본으로 이어지는 강행군 아닌가? 그리고 그분의 삶 대부분이 이런 공식일정들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분의 나이는? 총장신부님이야말로 당신 개인의 삶이 거의 없는, 진정한 의미에서 봉헌의 삶을 살고 있지 않으신가? 그런 생각이 들자 실망스러웠던 마음이 다소 수그러들었다. 총장으로서 당신의 사명을 다하시는 신부님처럼 나도 이 기간만큼은 내 사명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분을 따라다니며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면서 기도 생활은 어떻게 하실까? 사실 나는 의무감 내지는 습관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다. 부끄럽지만 기도와 삶이 동떨어진 느낌 역시 자주 받는다. 그런데 총장신부님을 보면서 기도가 그분의 삶 가운데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중간 휴식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등 기회가 될 때마다 깊은 침묵 속에 잠기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주교회의 본관, 서강대 이냐시오관 등 경당이 있는 곳을 지나칠 때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십자가를 응시하는 모습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느꼈다. 물론 그 순간에 총장신부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듯이, 그분이 보여준 언어와 행동은 단순히 시간을 따로 내서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와 활동이 통합된 활동 중의 관상을 살아내고 계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IMG_3937.jpg

 

 

그것을 더욱 확실히 느낀 것은 DMZ를 방문했을 때이다. 신부님께서는 그곳을 하나의 공식일정으로써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미 육군 소속의 Morrow 중령이 우리 일행을 수행하였는데, 우연히도 예수회가 운영하는 미국 Boston College 출신이었다. 그리고 한창 건축 중인 JSA 성당을 방문한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님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총장신부님과 그분들은 금세 친구가 된 것처럼 가까워졌다. 그것은 단지 신부님의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그분의 진심이 그분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측하지 못한 여러 만남과 우연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신부님의 사랑과 진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께서 총장신부님을 통해 일하시고 그분과 함께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DMZ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만 다리를 헛디뎌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덕분에 인대가 심하게 늘어났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하필이면 아직 일정이 반이나 남았을 때 이렇게 되다니.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끝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또 한 번 총장신부님이 떠올랐다. 신부님도 총장으로서 당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듯이 나도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전날과 달리 천천히 걸을 수는 있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결국, 모든 일정이 끝난 후 깁스를 해야만 했다.

 

마지막 날까지 나는 사진을 찍었다. 공항 출국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순간에도. 그러자 신부님은 나를 보고 카메라를 내리라는 손짓을 하며 다가오셨다. 그때에도 나는 사진을 찍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카메라를 내렸다. 그러자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바로 그때 우리가 예수회 안에서 한 형제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2019.08.Sch-Woo-jung-Stephen-Kim-with-Fr-General-Arturo-Sosa.jpg

 

 

 

총장신부님과 나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그분은 예수회의 최고 장상이고, 나는 연학수사이다. 그분은 나이가 많고, 나는 젊다. 그분은 방한 일정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분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분이 총장으로서 당신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 나도 사진 담당으로서 나의 사명을 다하였다. 총장과 그분의 그림자로서 완전히 다른 둘이었지만, 우리가 하나임을 느꼈다. 같은 성령, 같은 주님, 같은 하느님 안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1코린 12,4-6)

 

 

 

 

김우중 스테파노 S.J.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9-09-04 11:41:42 현장스케치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1

다사랑님의 댓글

다사랑 99.♡.21.87 2019.08.20 10:53

수사님 반갑습니다.
"스테파노 수시의 하느님나라 이야기" 의 글을
더이상 볼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필리핀에 가셨군요.
건강하게 주어진 길의 사명 잘 마치시길
기도로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