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식

[이냐시오 포커스 둘째 주간]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의 수도자 일기 - 1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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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의 유월절

 

 

지난 여름의 끝 무렵동료 예수회 신부님의 모친상에 조문하기 위하여 전주에 문상을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문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는 그만 거의 모든 역을 정차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경해야만 했습니다. KTX에 오르지 못한 저의 불찰을 못내 나무라며 열차에 오른 채 한참을 억울해하던 순간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김제 평야의 광활한 모습 위로 작열하는 여름의 강렬한 태양이 대지의 푸른 풀들 위로 장엄하게 복사열을 더해가고 있었습니다아름다운 그 평원위의 태양을 우러러보며 문득독일의 한 작가의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전후 황폐해진 독일의 문단에서 당대의 많은 독일 젊은이들에게 독일어의 아름다운 서정을 회복시켰다고 평가받는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의 <삼십세>라는 산문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여름이 이렇듯 스스로를 낭비하는 데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드넓은 김제 평야 위로 작열하는 한 여름의 태양은 제게는 그야말로 이제는 그만해도 좋을 충분한 낭비였습니다한 여름무더위의 환경 아래 타오르는 태양은 그야말로 낭비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에게앞선 문장에서의 여름은 거부할 수 없는 젊은 시절청춘이 올곧이 간직했을 불안한 열정이었을 것입니다때로는 이 열정이 당혹스럽게 초라한 결과를 마주하였을 때에는 이 모두가 그만 낭비 아니었을까?’ 하고 자문하게 하는 뼈아픈 두려움이기도 했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낭비처럼 보이는 인생의 한 여름과도 같은흔들리는 젊은이들의 열정은 성급한 성과와 효율적인 이익만을 쫓는 현대의 결과 중심주의를 간단없이 미루게 할 가공할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이 자신감으로 운반한 정당함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도록 이끄는 성실한 낭비였기 때문입니다이렇듯 대부분 우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낭비를 동반합니다따라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의 조언이 들릴 리 만무한 것은 명백한 이치입니다그것은 이미 자신들은 많은 것을 성취한 채 안전하게 도착한 결과의 영토에서 젊은이들이 생존을 걸고 시도하는 모든 것들을 쓸모없음으로 간주하며 보다 더 효율적으로 낭비의 시간을 없애라고 병리적인 결벽증처럼 몰아세우는 편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충분해도 좋을 이 젊은이들의 열정의 낭비를 쓸모 있음에만 몰입하도록 길들이고젊은 영혼들이 시도한 모든 시간들을 경제적 가치로서만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나아가 청년 지성들이 마땅히 삶의 한 과정으로 딛고 가야할 실패의 시간들을 없애가려고만 하지요따라서 삶의 한여름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태양은 결벽증처럼빛을 내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여기며 두려워하게 이르렀습니다이를테면 자신이 태양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채 인공의 조명 아래에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포로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독일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1959년 4월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을 스위스의 아름다운 시골로 초대합니다그 곳은 시간을 충분히 낭비할 수 있는 아주 한적한 곳이었습니다하지만시인 파울 첼란은 자기가 그곳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답장을 보냅니다.

 

당신이 초대한 그 시간은 유월절 기간이에요유월절 기간에 런던에 있는 고모님 댁에 가야한답니다저는 이집트에서 단 한번이라도 벗어난 기억은 없지만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고모님과 함께 지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노예생활로부터 탈출한 이후유월절이라 불리는 파스카를 기념합니다이에 대한 내용은 탈출기의 성경을 통해 친숙하게 느껴지는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다시 말해유월절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상태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합니다동시에 신약에 와서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는 인류가 죄의 노예상태로부터 완전한 구원과 해방을 얻게 된 파스카 축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대관절파울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이집트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의미가 그에게는 이집트를 단 한 번도 벗어난 기억도 없는데이집트에서의 유월절이라뇨이것은 마치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에 모두들 대보름달이 아닌 초승달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의 언어 모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루마니아가 여전히 독일어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때 태어난 유대 시인 파울첼란은 2차 세계대전 당시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의 가족 모두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그 후그는 영혼이 너덜너덜해진 채 자신에게 끔직한 고통을 안겨 준 원수들의 언어로 시를 썼습니다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겪은 고난을 아름다운 독일어로 승화시킨 것입니다그는 20세기 독일 청년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입니다첼란이 잉게보르크에게 말한 이집트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언어적 포로상태였습니다자신이 원수의 언어인 독일어를 자신의 모국어이자 시어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던 굴욕적인 언어적 포로생활을 의미합니다따라서 이집트에서 한 번도 벗어난 기억이 없다라는 첼란의 말은 그가 바로 이 언어적 포로상태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파울첼란이 말하는 이집트에서의 유월절이라는 말이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유 될 수 있을까요포로상태의 노예적 삶이 상시화 된, ‘이집트라는 자신의 굴욕적 언어의 포로상태에서 시인 파울첼란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그것은 상당히 전면적인 시도였습니다이른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문학적 시를 짓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지요그것은 자신이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유월절이었습니다곧 유월절의 어원인페자흐(Pesach-지나가다)라는 의미에 걸맞게 자신의 삶이 온전히 고통 속에서도 존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기념하여 왔던 것입니다.

 

이 남모르게 진행된 시인 파울첼란의 정신은 효율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그야말로 완전한 낭비일 수 있습니다이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낭비로 간주되는 많은 것들은 용도 폐기되어 버린 가치들입니다이 버려진 가치들은 재활용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쓰레기 집하장의 플라스틱처럼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점점 더 쌓여만 갈 뿐입니다이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지속적으로 연기되어온 나머지희망 자체가 휘발되어 버린 채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줄을 서야하는 기가 막힌 현실의 뼈아픈 은유입니다이는 젊은이들을 현대 사회 시스템의 초라한 부속품처럼 노예 상태로 강압합니다현대 자본주의 이념의 상시화는 우리들만의 이집트라는 새로운 노예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그런데 시인 파울첼란은 역설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접근합니다. ‘이집트에서의 유월절은 논리적으로 모순 일 뿐만 아니라거의 불가능한 상태의 형용구이기 때문입니다포로상태를 항구하게 경험하고 있는 위험 가운데서 이미 노예상태를 벗어나 탈출해 버린 시점을 경축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고 바로 그 자체가 카오스곧 혼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 안에는 무질서와 혼란만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효율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감히 조언하고 싶습니다그러한 카오스의 어두운 심연에는 사실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질서감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이 안에는 세상의 저열한 질서가 강요하는 서열중심의 세계관이 아닌다양함이 움직입니다또한이 질서는 서로간의 차이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는 질서입니다이를 통해 우리는 그 카오스 안에 아름다운 세계가 고요히 운행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시인 파울 첼란은 이집트에서의 유월절’ 노예상태가 상시화된 환경 아래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기념하고 경축했습니다그리고 그 기념과 경축의 방식은 자못 비장하기도 했고때론 눈물겨웠습니다왜냐하면폭압의 상시화 안에서 그 폭압의 질서를 거스른다는 탈출은 시대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뿐만 아니라단순한 몰이해를 넘어서 시대 자체로부터의 완전한 외면까지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시대로부터의 완전한 외면으로부터 젊은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습니다동시에 그 대화는 상시화의 불온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몰가치적이고 비인격적이어서 더더욱 치명적인 자본의 노예상태로부터 온전히 탈출을 돕는다고 믿습니다혼돈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 어둠의 심연에는 분명히 은닉되어 있는 새로운 질서가 사랑과 풍성한 인격이라는 이름으로 경이롭게 펼쳐져 있다고 호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아울러그 두려움 천만한 카오스의 심연에 마땅히 함께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벗으로서의 동반자 역할이 오늘날 사제직에 부여한 시대적 소명의 전부라고 믿고 싶습니다.

 

여전히 밤이 지나가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의 마음 안에 빛이 깃들기를 기도합니다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을이 도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이 세상 모든 지나가는 것들은 젊은 영혼의 살결을 예외 없이 할퀴지만 지나가고 남은 존재는 젊은 영혼들이 그토록 꿈꾸던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그렇게 온전히 자신으로 남은 존재그 존재를 우리는 비로소 인간’ 이라고 부릅니다.

 

 

김상용 도미니코(예수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0-01-13 13:52:57 영성나눔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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