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식

[공지] [리포트]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 장애인 기술학교 졸업식 리포트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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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캄보디아 미션의 Banteay Prieb 장애인 기술학교가 2020년부터 기존의 직업교육 사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를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예수회 한국관구 홍보국 소속 직원 정다운(안젤라)씨가 Banteay Prieb 졸업식에 다녀온 후기입니다. 정다운 안젤라 자매는 2015년부터 2년간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에서 홍보 담당으로 일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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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헤어져요학교는 문을 닫고요.)

 

누군가 불편한 다리로 애써 다가와 말했다. 매년 이맘 때쯤 졸업식을 맞는 반티에이쁘리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특별한 것은 이 것이 졸업생의 말이 아닌 반티에이 쁘리업 직원 선생님 피어리(Yun Pheary) 씨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십 수년째 이 곳 장애인 기술 학교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터를 잡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그였다. 반티에이쁘리업 졸업생이기도 한 그는 이 곳 장애인 기술 학교의 기숙사에서 집선생님으로 일했다. 이 곳에 입학한 학생들은 예외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한 집에서 열명 내외가 함께 생활하며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공동 생활을 하며 사회 생활을 경험하고 자기 돌봄을 훈련하는 시스템이다. 피어리 씨는 10번 집의 집선생님이면서 동시에 기숙사 전체의 보건선생님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마음을 다해 학생을 돌보며 이 학교에 청춘을 바친 그였다. 그런 피어리 선생님이 고하는 작별은 상상해보지 못했다. 반티에이 쁘리업이 신입생을 받지 않는 일 역시 지난 30여년 동안 누구도 상상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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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다음날 헤어지는 학생들. 사진 제공 임종진)

 

 



화해의 공간, Center of Dove

1991년 시작한 반티에이 쁘리업은 지난 30여년 간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에게 있어 든든한 친구이자 쉼터 같은 존재로서 자리매김했다. 내전이 활발했던 80년대 태국 국경지대의 난민캠프에서 캄보디아인들을 동반했던 예수회원과 협력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처음 이 나라 안에 들어와 시작한 사도직이 바로 이 곳 장애인 학교였다. 

 

그 시절 난민캠프에서 봉사자로 일했고, 반티에이 쁘리업의 시작을 함께 했던 잡(PHONGPHAND, Phokthavi, 닉네임 JUB) 신부(사진)는 반티에이 쁘리업이 가진 정신은 ‘화해’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IMG_3733.jpg“초창기 학교에서 함께 살던 학생들은 대부분 군인 출신이거나 지뢰 피해자들이었어요. 같은 집에 사는 한 학생이 지뢰를 밟아 다리 한 쪽을 잃어버렸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학생이 답했죠. 그 때 내가 그 동네에서 주둔했는데, 네가 밟은 지뢰가 내가 설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요. 둘은 서로의 잘려 나간 다리를 부여잡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또 웃었습니다. 그것이 반티에이 쁘리업의 모습 그 자체였어요.”

 

당시, 마음 속에 적군, 폭력, 증오 뿐이었던 학생들이 이 곳에서 전쟁의 기억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의 장애, 부족함과 화해했다. 그 모든 체험들이 이 곳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장애와 화해한 이들은 1년 간의 직업 교육과 공동체 생활을 마친 뒤 저마다 삶으로 돌아갔다. 그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회복한 자신감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변화한 자신의 마음과 달리 여전히 그대로인 사회의 편견과 자신의 한계 앞에 무너지는 졸업생도 있었다. 1999년, 졸업생들의 생활과 자립을 모니터링하고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아웃 리치 팀의 매니저 멘 윷 (Men Yuth) 씨는 반티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병원이라면 이 곳에서 쓰는 약은 함께 하는 장애를 지닌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제가 처음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되었을 때, 내 인생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런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살면서 제가 나아지는 것을 느꼈지요. 그리고 그런 저희를 언제나 소중하게 받아주었던 신부님들, 봉사자들의 보살핌 안에서 나도 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꿈꿀 수 있었습니다. 매 년, 졸업식 때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돌아가는 곳은 예전과 똑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너희가 달라졌다. 그것을 믿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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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맨 윷 선생님과 끼께 주교, 이재욱 신부. 사진 제공 임종진)

 

 


 

졸업이란 날개를 달고

그런 반티에이 쁘리업이 올 해는 다소 특별한 졸업식을 맞이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새로운 지역 토지 개발 계획으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센터 문을 닫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새롭게 시작한 특수교육반은 새로운 부지에서 사업을 이어가겠지만 기존의 학교는 우선 학생 모집을 중단하고 재정비를 위한 식별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많은 직원들과 선생님들, 학생들은 숱한 추억이 깃든 학교와의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서운한 것은 오랜 시간 이 곳을 터전으로 함께 자라온 나무와 풀꽃, 학생들의 손때가 묻은 건물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여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졸업식을 찾았다. 졸업생과 선생님들, 지역 사람들,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예수회원들과 예전에 활동했던 봉사자들까지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2005년, 예수회 한국 지구가 관구로 승격된 이후 2006년에 캄보디아 미션이 한국 관구 관할 지역이 된 이래 수많은 한국인 예수회원과 봉사자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을 찾았다. 그러한 이유로 이번 졸업식에도 많은 손님들이 한국에서 왔다. 막상 센터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이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반가움과 벅찬 기쁨이 졸업식장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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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을 받고 기뻐하는 졸업생들. 사진제공 임종진

 

졸업식은 늘 그랬듯 하루 온 종일을 꽉 채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졸업 행사와 졸업장 수여식이 끝나고 학생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계주와 줄다리기, 항아리 터뜨리기 등 이어지는 모든 경기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만일 다리가 불편하다면 팔이 불편한 친구와 짝을 이루어 함께 하면 그만이다. 운동회가 끝나고 저녁 파티 때에는 춤판이 벌어졌다. 각자 흥에 겨워 춤을 추는데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신체적 장애나 물질적 가난이 당신의 행복과 우리들의 연대를 방해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졸업식 내내 던져졌다. 매년 반티에이 쁘리업 졸업식이 학생들의 앞날을 축복해 온 방식이었다. 모두가 웃고 춤추던 그 때, 깜짝 공연이 열렸다. 재봉 프로덕션 직원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합창을 선보였다. 노래 하는 내내 반티에이 쁘리업에 대한 감사가 느껴졌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사이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눈물은 다음날 새벽에도 이어졌다. 일년 간 정을 나누었던 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졸업생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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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서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합창을 한 재봉반 졸업생들에게 다른 학생이 꽃을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임종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매년 졸업식이 끝난 뒤, 학생들이 모두 떠나가도 푸른 색의 나무들은 여전히 남아 고요해진 센터의 자리를 가득 채우곤 했다. 사람들의 이별도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이번 졸업식이 모두에게 더욱 진한 슬픔으로 남는 이유는 센터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도 이별을 해야 할 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올 해에도 졸업식이 끝난 다음 날, 학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은 환경팀 사무실이었다. 오랜 시간 환경팀 디렉터를 맡아 온 가비 신부 (현 JSC디렉터)를 대신해 환경팀 업무를 맡고 있는 필리핀 봉사자 리즐(Liesl)씨와 함께 최근 몇 개월 간 센터의 자연이 어떻게 훼손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즐씨는 학교 앞에 있는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도 사라지는 거냐는 물음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캄보디아에도 오래 되고 커다란 나무는 귀중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죠. 하지만 개발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봐요. 처음, 묘목장에 있는 큰 나무에도 캄보디아 불교의 주황색 천을 두르고, 매일 같이 우리가 사정했어요. 함부로 베어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렇지만 그것이 잘려 나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슬픈 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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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식 프로그램의 일환인 운동회에서 박터뜨리기를 진행하는 학생들. 사진 제공 임종진)

 

센터에 공사 차량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학교 건물 앞에 있는 바이욘 석상에 모여 반티에이 쁘리업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의식을 했다. 이 곳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삶에 감사하고 이 곳에 있는 모든 창조물들을 위해 그리고 오늘날, 이별을 준비하는 학생과 직원, 선생님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현재 반티에이 쁘리업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루디(Rudy Chandra Wijaya) 신부는 “비록 지금은 학교가 잠시 문을 닫지만, 처음 예수회가 이 곳을 통해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려 했던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그려 나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루디 신부가 말했던 희망은 과연 텅 빈 말 뿐인 것이 아니었다. 2016년 처음 사업을 시작한 특수교육반은 새로운 부지로 옮겨 내년에도 꾸준히 운영을 이어간다. 또한 졸업생을 담당하는 아웃리치 팀과 새로운 시작을 디자인 할 위원회 역시 졸업식 이후 바로 활동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재봉과 목공예 프로덕션, 휠체어 프로덕션 역시 현 학교 부지 한 켠에서 사업을 이어갈 것이다. 목공예 프로덕션에서는 반티에이 쁘리업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학생 기숙사 철거 부자재를 이용한 제품 제작을 기획 중이기도 하다. 특수교육반 담당, 팔라(Kim Phalla) 선생님은 단단한 표정으로 반티에이 쁘리업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에게 있어 반티에이 쁘리업과 같은 곳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이처럼 세심하게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며 직업 기술과 공동체적 삶을 가르치는 곳이 또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시작한 특수교육은 이 땅에서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곳의 소중함을 알고 더욱더 지켜 나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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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 왼쪽 팔라 선생님. 특수교육반 학생들과 함께, 사진 제공 임종진)

 

 

 

성탄을 앞두고, 대림 초에 불이 하나씩 더 밝혀지는 동안 반티에이 쁘리업에는 다가올 이별에 대한 복잡한 마음들이 더욱 엉키어 가는 듯 했다. 그러나 혼란과 아픔을 뚫고 가장 가난한 곳에 빛으로 내려오신 아기 예수님 강생의 신비처럼, 이별을 준비하는 반티에이 쁘리업 곳곳에서 여전히 희망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 것은 지난 30여 년 간, 서로의 장애를 끌어안고 함께 웃으며 살아 온 반티에이 쁘리업의 세월과도 꼭 닮아 있었다.

 

정다운 안젤라 (예수회 한국관구 홍보국)


 


(반티에이 쁘리업 부지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새로운 계획이 발표되기 직전, 센터를 방문한 한국의 영상작가 오병훈 (헤르만요셉) 형제가 촬영한 드론 영상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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