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식

[공지] 미국 중서부관구 기고 글 : 어느 예수회원의 여정 - 존 메이스 신부 "Out of the Blue"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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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느 예수회원의 여정 : 존 메이스 신부 
“Out of the Blue(느닷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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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캄보디아를 떠나며 공항에서. 


존 메이스 신부가 필리핀에서 봉사하는 동안 금경축을 맞이했을 때, 당시 예수회의 총장이었던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가 강론을 통해서 “주님과 함께 여행하는 50년 – 완벽함 안에서 연마되었던 50년” 이라는 말로 메이스 신부의 금경축의 의미를 정리하였다.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홈페이지에 게시된 소식에 따르면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의 이 표현은 존 메이스 신부의 “풍부하고 도전적이며 관대하고 사심 없는 삶”을 요약했으며, 그가 지닌 “다방면에서의 재능과 더불어 깊고 자비로운 돌봄과 우정을 쌓는 능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1년 후, 캄보디아 예수회 미션에서 그에게 영적지도를 받은 김두현 신부 역시 메이스 신부님에 대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다음과 같은 말로 공감을 표시하였다. “메이스 신부님은 매우 잘 듣는 사람이셨습니다. 그의 존재는 당신을 편하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요. 또한 그는 예수회 생활에 대해 명확함과 통찰력을 전해주는 큰 지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에서 메이스 신부가 보냈던 시간들은 그가 아시아에서 예수회와 보편적 사명을 위해 일해온 수십년 동안의 여정의 매우 작은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그가 미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아시아를 떠날 때 캄보디아의 공동체에서 자신의 지난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한 “Out of the Blue(느닷없이)”이라는 표현에서 그는 주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자주 예상치 못한 곳으로 그를 데려 갔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회상했다.

 

지리적, 문화적 최전선을 가로지르다

미국 오마하 출생 존 메이스 신부는 크레이튼 예수회 대학 부속고등학교 출신이다. 입회 후  양성기 중 그는 아시아에서 첫번째 사명을 수행하였다. 그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의 광주 대건신학교에서 영어와 철학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다시 한국으로 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 예수회의 수련장으로서 봉직하였다.  또한, 메이스 신부는 서울에 있는 서강대학교의 제 5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품 이후 그는 한국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서강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데 보냈다. 


 

 

한국 예수회는 1955년, 한국 교회로부터 한국 젊은 이들의 영적 양성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예수회 일본관구 게페르트 신부가 한국 땅을 밟으면서, 그리고 이어서 위스콘신 관구가 한국에서 서강대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설립되었다. 이후 한국 예수회는 1985년 독립 지구가 되었고 2005년 관구로 승격되었다. 1960년 예수회는 서울에 서강대학교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중서부 예수회 관구들이 서강대의 설립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존 P. 데일리 신부는 대학 재무이자 영어교사로서 미션을 시작하였고, 1963년에 서강대학교의 총장이 되어 12년 동안 600명의 규모의 작은 대학이었던 서강대학교를 한국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서강대학교에는 80여 개국에서 온 15,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많은 동문들이 정치, 경제,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후 메이스 신부는 동 티모르로 파견되어 동 티모르에서 여러 소임을 담당하였다. 아시아 선교사 생활 중 미국으로 돌아갔던 메이스 신부는 수년에 걸쳐 미국 예수회 마켓 대학교Marquette University의 교목부처장을 지냈고 예수회 워싱턴 D.C. 지역구의 양성 담당과 크레이튼 대학의 교목 사제로서 일했다. 이후 필리핀과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로서 삶을 이어갔던 그는 2016년, 그의 고향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늘날 메이스 신부는 위스콘신 주 와와토사에 있는 성 카밀로 St. Camillus 예수회 공동체에서 예수회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임무를 맡으며 지내고 있다. 그는 예수회원으로서 살아온 여러 해 동안 여러 평신도 동반자들에게 받았던 재정적 지원과 건강에 대한 보살핌 등에 대해 이렇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우리 후원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나는 한국 사회가 요구했던 중요한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와 함께 일했고 우리의 일을 돕고 함께 해주었던 나의 모든 친구들께, “감사합니다!(Kamsahamida!)”라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존 메이스 신부의 영적 나눔

저에게는 제가 1967년 광주에서 부제로 지냈을 때, 감사함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준 아주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저의 책임 중 하나는 일요일에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위한 시설인 현애원에 가서 그 곳에 계신 분들께 성체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현애원 주민들 가운데 가톨릭 신자들은 주말이면 간단한 성찬식을 거행하기 위해 작은 경당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경당에 오는 것을 거부한 채 자신의 작은 오두막으로 성체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분도(베네딕토)였습니다. 저는 그의 병세가 꽤 많이 진전된 탓에 그가 다른 주민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 때 이미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코 마저도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잠시 동안 시간을 내어 분도 형제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병에 걸리고 이렇게 외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질병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을 다시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그 역시 그가 한 말을 다시 반복했습니다. 

나는 그가 한 말에 놀랐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나병으로 자신을 축복해주신 것에 대해 매일같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분도에게 그 말을 명확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말은 간단했습니다. 그가 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결코 현애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랬다면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알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나는 분도에게 감사합니다. 그의 단순하고 깊은 믿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 특히 숨겨진 은사를 인식하고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회 미국 중서부 관구 홈페이지 <A Jesuit's Story>에 올라온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https://jesuitsmidwe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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