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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방한] [총장강론] [190716] 서강대학교에서의 강론 : 보다 더 위대한(magis) 공동의 사명을 위한 화해로의 …

관리자 163.♡.183.50
2019.07.17 22:20 226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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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이 곳 서강대 성당에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소 신비로운 방식으로 여기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선택하셨는데, 각자의 다른 역사, 가족들, 고향 도시들, 친구 모임들로부터 우리를 부르시어 오늘 이 성체성사를 거행하도록 모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모세를 위한 사명을 갖고 계셨던 것처럼 세상에 태어난 모든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사명을 갖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는 제1독서가 알려주고 있는데, 이집트에서 대박해가 있던 때에 히브리인 가족에게서 태어난 모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를 살해당할 위기에서 구하려고 왕골상자에 숨겨 둡니다. 파라오의 딸이 이 아기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삼고 모세라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모세의 삶이 펼쳐짐에 따라, 그는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어 인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명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고유한 인생 이야기가 있고, 각자의 인생 이야기 속에는 사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도전은 우리 인생에 의미를 주는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개개인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체 및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서강대학교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습니다. 지식을 늘리고, 분석하고, 논문을 쓰고, 연구에 매진하라는 소명이 있습니다. 또한 리더십의 사명,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사명, 대화를 촉진하며 지식인 공동체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들은 모든 고등 교육 기관에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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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에 계신 여러분은 특별히 한국에서 유일한 예수회 대학의 구성원이란 점에서 고유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예수회의” 라는 형용사 뒤에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고찰을 위해 두가지 요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요점은 관여와 화해로의 부르심입니다. 연구와 학습은 바람직한 것이며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회 대학에서는 이것들이 그 자체를 위해 행해지지 않습니다. 더 큰 목적이 있는데, 바로 '관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이 세상에 참여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적 때문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더 나은,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투신의 감각으로 응답하며 '관여'합니다.  우리가 '관여'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가난하고 소외된 수많은 이들로 인해, 오용되고 황폐해진 우리 공동의 보금자리 지구로 인해, 사람들의 삶에 하느님이 안 계실 때 올라오는 공허함을 느끼는 사회들로 인해 우리가 움직여지기 때문입니다. 서강 공동체는 하느님과의 화해, 피조물과의 화해, 타인들과의 화해로 투신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서강공동체는 학생들을 대학을 졸업해서 같은 사명을 이어가도록 양성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예수회 대학의 정체성에 관한 두 번째 요점은 특별한 행동양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단어로 말씀드리면 마지스 (magis) 입니다. 즉 보다 더, 더 위대한, 탁월성을 의미합니다. 그 반대는 미지근함, 타성입니다. 최소한에 만족하는 것,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 덜 성가시다는 이유로 가장 미약한 저항의 길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탁월성은 경쟁력이나 타인들을 능가하고자 우월성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마지스'는 엄숙함, 깊이, 탄력성으로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도전하고 사회적 변화와 마음의 회심이라는 변혁을 향해 전진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의 문제를 보게 됩니다. 이 도시들 주변에서 아주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기적들이 그들 한가운데서 일어나지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보지 않았고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바꾸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현실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관여도 없고 변화도 없었습니다. ‘보다 더’를 추구하는 마지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불행하여라” 탄식하십니다. 당신들이 이것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건드시기를, 그리하여 수많은 치유가 필요한 세상을 향해 우리의 눈을 활짝 열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용기를 위해, 변화를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개방성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는 우리가 협조와 협력 없이는 이 시대 수많은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오늘 가르멜 산의 성모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항상 당신 아드님께 돌아서고,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해달라고 성모님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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