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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방한][연설][190716] 아르투로 소사 총장 연설; 서강에서의 연설. 오늘날의 대학, 예수회 대학으로서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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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09:51 25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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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발표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여러분의 구체적인 제안들에 대하여 제가 응답할 수는 없더라도, 제가 이러한 문제들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제가 단지 듣고 있고, 이 모임에서 여러분들도 서로를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분들이 여러분들이 제시한 좋은 아이디어들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즉, 기금과 급여, 다른 대학들과 보다 긴밀하게 함께 일하는 것, 학교 운영에 관한 사안들 등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 명백한 사실입니다. 특별히 여기 서강대학교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 직원 선생님들, 총장님과 학처장님들, 교수님들, 학생들, 그리고 이 사도직의 다른 동반자들 – 예수회 전통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해서 성찰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예수회라는 이름은 “구찌” 혹은 “디오르”와 같은 단순한 상표이름과도 같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상표를 본질에는 아무 관심없이, 외견을 보여주고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예수회 전통으로 이룩한 서강대학교의 높은 교육의 질에 대해여 많은 언급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육의 질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러한 것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것들은 여러분께서 언급하신 문제들과 연관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하겠습니다. 첫째, 오늘날 예수회 대학의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들을 다시 한번 강조할 것입니다. 둘째, “지성 사도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대하여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 모든 예수회 대학들의 사명의 일부인 사회에 대한 투신 social engagement에 대해서 논의할 것입니다.


1. 첫째, 오늘날 예수회 대학의 특징들

  콜벤바흐 전 예수회 총장님께서 2000년도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타 클라라 예수회 대학 공동체에서 하신 연설 중에 기억할만한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회 대학들의 진정한 가늠자는 우리 학생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2000.10.6) 

즉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2018년 7월 로욜라에서 예수회 대학 대표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진 저의 작년 연설 중에 콜벤바흐 신부님의 생각을 떠올리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졸업생들의 인간성의 우수함으로 인정받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경쟁적인 취업시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의 높은 수준 뿐만 아니라 … 자신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책임감을 지닐 수 있는 일관성 있는 개인들을 교육시키고자 합니다.”

 

따라서 유념해야 할 첫 번째 지표는 서강을 졸업하는 학생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아루페 신부님의 때론 진부해 보이는 그리고 때론 거의 이해되지 않은 말씀인 진심으로 ‘타인을 위한 사람’이 될 때, 바로 그 때 서강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서강에 어떤 자원들이 부족하거나 대학 운영에 문제들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젊은 학생이 제대로 강조하듯이, 두 번째 지표는 하나의 통합된 독립체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대학의 방향성과 자기 이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측면에서 21세기 예수회 대학은 자신을 화해하는 삶의 원천, 화해의 중심, 그리고 생명에 대한 분명한 가치를 지닌 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회 대학은 예수회가 현재와 미래에 각 개인과 모든 인류를 위한 품위 있는 삶의 충만성을 실현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계속해서 투신하는 것을 자신의 일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학은 많은 구조들, 능력들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러한 분명하고 통합된 사명을 구현합니다.


  삶과 화해에 대한 이런 관심은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과 성삼위의 세상 관조의 사랑으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시는 육화에 대한 성인의 묵상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보다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으러 떠난 수백만 이민자들의 부르짖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 중에는 폭력의 희생자들; 정의를 요구하는 가난한 사람들; 종교나 피부 색깔 때문에 멸시 받는 사람들; 공공선과 환경보호에 신경 쓰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독점된 정치적 권력 때문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공공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묵상을 보면, 예수님을 우리 모두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세상에 보내시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시선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과 자유의 사회 안에서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채택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모든 인간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의 연구 활동에 매우 커다란 도전을 가져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우리의 연구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와 문제들에 대한 분석에 관련된 연구자들은 필연적으로 불의와 불평등의 뿌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들은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위해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제안합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교실에서 가르칠 때 교육학적 도전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인간 삶을 위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항상 질문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바라봄으로써 그리고 현실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이렇게 자리매김함으로써, 우리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대학은 충만된 삶을 생성하기 위하여 사회적 변화를 위한 목표가 됩니다.

 

  예수회는 복음서로부터 영감을 받고 부여 받은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 놀라운 공간을 대학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명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의 대화를 통하여 반드시 사회적 정의와 환경 지속성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대학은 지식 창출의 과정을 증진시키고 인간 교육의 과정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더불어 대학은 화해하는 그리고 평화로운 삶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회 고등 교육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양성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즉 학생들을 세계, 지구 그리고 삶 자체를 돌볼 줄 알고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는 세계 시민이 되도록 교육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회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거나 일한 사람들이 긍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과 보존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로 전락해버린다면, 뭔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삶에 대한 이러한 방향성은 예수회 교육의 인본주의적 특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회 대학 교육의 전통은 각 개인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원해왔습니다. 각 개인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cura personalis는 우리가 사용하는 문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각 개인이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인류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도록 그래서 초월성에 자신을 개방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2. 둘째, 예수회 지성 사도직에 대해서

  2001년에 콜벤바흐 신부님께서 언급하신 것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중한 말씀입니다: “예수회는… 다른 사도직들과 관련하여 여전히 지성 사도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계화되고 동시에 다양화된 세상에서 예수회가 모든 문맥에 타당한 보편적 규범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다 더 큰 하느님께 대한 봉사, 영혼을 위한 선익, ‘장소와 시대와 사람들에 적응함’이라는 이냐시오적 원칙의 지혜.”

 

  그러나 콜벤바흐 신부님은 또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모든 예수회원들이 지성 사도직에서 일하도록 불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각 예수회원은 사목적 사도직과 사회 사도직을 포함하여 어떤 영역에서 일을 하던지 전문적이고 진지한 사도직으로 불림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성 사도직은 단지 다양한 사도직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예수회 카리스마의 특징이며 모든 예수회 사도직에서 드러나야 하는 우리 행동양식의 한 측면입니다.

  지성 사도직의 목적은 지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회 대학기관들이 지식을 발달시키고 전체적인 인간 교육의 요소로서 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지성의 깊이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도전은 그것이 사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복음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 역사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의 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러한 길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혜는 우리들 안에서 그것을 드러내는 지혜로운 사람들 안에 구현됨으로써 존재합니다. 지혜는 사람의 두뇌나, 책, 가상 기억장치, 도서관 혹은 초대형 서버에 저장된 지식의 축척이 아닙니다.  지혜는 어떤 사람들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어떤 특징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인간적, 정서적, 그리고 지적 성숙도를 통하여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우리 자신의 평범함을 초월하여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문제이며, 동시에 역사와 창조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라는 지혜를 추구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수회가 책임지고 있는 대학은 창조에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이러한 창조적 능력은 무엇보다도 남들보다 여러 발자국 앞서 나갈 수 있는, 그래서 시대에 필요한 사안들을 앞서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드러납니다. 대학은 현재를 넘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영감을 주고 빛을 밝혀 주는 과거의 기억 안에서 자양분을 발견하고 경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사회적 투신 안에서 예수회 대학들의 우선 순위

  우리 시대는 세속주의와 종교, 그리고 이념적 근본주의의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아래 대학에서 가톨릭의 존재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대학은 다양성이라는 환경을 특징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대화를 위한 그리고 역사적, 개인적 그리고 지적 과정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환경들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인간의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연구와 가르침을 통해 사회의 변화 social transformation의 가능성들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복음서에 드러난 해방의 기쁜 소식이 어려움과 불확실성 가운데 충만한 삶을 생성해 낼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동시에 희망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줍니다.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주는 세속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받은 은사의 모든 측면들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더 밀접하게 협력자로서 일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협력은 우리 정체성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고등교육의 복잡성을 매우 잘 의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복잡한 사명의 협력자로서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책임감을 공유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여러 가지에 대해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생각과 관심들을 나누어 주셔서 그리고 여기 서강대학교에서 여러분들을 위한 제 자신의 관심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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