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P

[포커스] UAP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김민 신부) - ② 베니 줄리아완 S.J. 신부 “UAP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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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15:00 3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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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베니 신부의 발표는 굉장히 개성이 있는 발표였다특히 베니 신부는 UAP에 관한 우리의 오해가 선택과 관련된 영어단어 preferences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는데, 이 부분은 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발표가 끝난 후 참석자들의 상당수가 베니의 발표를 통해 자신의 오해를 수정할 수 있었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하지만 베니 신부의 발표가 갖는 가장 큰 기여는 UAP가 그다지 보편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통찰일 것이다

베니는 서구세계-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의 맥락과 인도네시아의 맥락을 비교하면서 UAP는 우선적으로 맥락화 contextualization의 과정을 통해 소화되어야 하며 그런 충분한 성찰-해석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유 appropriation-의 과정을 통해 각 관구가 자신의 맥락에 맞는 혹은 유효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베니의 발표는 UAP의 맥락화라는 취지에서 꽤 좋은 사유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베니 줄리아완 (사나타 다르마 대학교 교수/인도네시아 관구),

“UAP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2019523일 목요일,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LDP modu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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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으로서의 UAP

UAP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선택 preference과는 무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UAP는 방향성 orientation에 관한 것이다. 사실 선택 preference은 어떤 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취사선택의 문제인 셈이다. 더 유효하고 의미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3년도의 다섯 가지 사도적 선택은 이름에 합당한 것이었다. 예컨대 2003년도 사도직 선택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미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로마에서 열린 리더십 프로그램에서 아르투로 소사 총장을 만났을 때, 그분은 UAP를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이 오리엔테이션(방향성)은 일종의 지평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UAP는 여러분이 머물고 있는 이 족자카르타 곁에 있는 므라피 화산과도 같다. 우리는 저 화산을 보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UAP를 보면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총장은 UAP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관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UAP에 관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더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지금 교구의 본당 사도직을 하고 있다고 하자. UAP에는 본당 사도직이 빠져 있으니 나는 이 사도직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학교나 교구라는 지금의 나의 장소를 UAP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UAP는 우리의 방향을 정하고 우리의 사도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명하게 말하건대, UAP는 어떤 지침이 아니다. 마치 영신수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과 같은 셈이다. 영신수련은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단이다. 즉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법 grammar과도 같은 것이고, 하느님이 어디 계시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단인 것이다.

 

UAP와 맥락화 Contexualization

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의 경우 세속화가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UAP안에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속화가 이슈는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건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경우 세속화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과잉, 즉 종교적 근본주의가 문제이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의 예수회원들은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새로운 방식-종교의 과잉과는 다른-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교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신수련은 그런 점에서 하느님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도록 우리에게 건네진 초대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UAP를 통해 우리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UAP가 발표된 로마가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자리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청년들과의 동반과 여정을 한번 보자. 이는 서구사회에는 잘 적용된다. 교회가 이미 청년들에게는 구식이 되어 버렸으니까.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에 매력을 못 느끼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르다. 오히려 더 많은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다. 물론 여러분이 있는 이 족자카르타가 학생들의 도시라는 사실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인정하자. 교회는 그다지 청년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교회는 완벽함을 추구하고 그렇기에 실수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 반면 청년들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를 보자. 이 주제는 사회사도직 종사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사회사도직은 수많은 예수회 문헌들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사도직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 언급은 저기 가난한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한다.’는 수준이다. 이게 전부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지만, 우리는 예수회가 교육에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회원들은 언제나 교육과 양성으로 마음이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사회사도직을 한다면 아마도 교육을 통해서 계급이동성을 높이는 정도 social mobility through education가 될 것이다. 이 정도가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UAP는 우리의 이 현실을 우리가 돌아보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이 사실을 말이다. 잊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당장 예수회 대학에서 지급되는 장학금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라.

 

이러한 질문들과 물음들은 나에게 어떤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걱정은 매우 건강한 것이고 오히려 좋은 징표 sign이다.

 

공동의 집을 돌보기를 보자. 예전부터 생태환경은 우리의 사도직 우선순위였었다. 얼마나 바뀌었는가? 여기 태양광을 사용하고 있는 공동체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 (*참고로 제35차 총회와 후속문헌들에서 태양광 설치를 권고하는 언급들이 있었음.) 보라. 바뀐 것이 거의 없다. 우리 자신이 실행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근심들, 놀라움들이 UAP가 우리에게 초대하고 있는 바이다. 우리는 UAP를 놓고 성찰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신수련, 리더십 프로그램, 무엇보다 변화에의 원의

로마의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평신도들이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들의 지식의 깊이, 이해의 깊이, 영성의 깊이, 참여자들이 보여주는 투신과 참여의 정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그건 이것이다. ‘영신수련은 우리의 변화를 위한 문법이다.’ 리더십과 얼마나 상통하는 말인가.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영신수련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로드맵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올라온다. 사제로 서품되기까지 11년의 양성의 시기를 거쳤다. 나는 얼마나 변화했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양성의 결과로 일어난 것일까? 하물며 1주간의 프로그램이나 2달간의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까? 2년간의 수련기를 돌아보자. 그 얼마나 밀도가 높았던 시간이었나. 하지만 상당수의 수련자들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십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한가지 개인적인 비밀을 공개하겠다. 내가 수련기 1년차 때 참여했던 30일 피정은 실패로 끝났다. 눈물은 나지 않았고 기도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피정집에서 나와서 수련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3개월의 참회와 기도생활, 지도를 받으며 다시 30일 피정에 들어갔다. 이 실패에서 내가 배웠던 것은 이것이다. 우리 마음 안에 변화하고자 하는 깊은 원의가 없다면 결코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 영신수련이 되었듯, 리더십 프로그램이 되었든, 참가자들이 변화에 대한 원의가 없다면 이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남들이 변화하도록 도와주고 싶어도 그들에게 변화하고자 하는 원의가 없다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다시 리더십 프로그램에 관해서

예전에 우리가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에는 정치적 리더십이었다. 하지만 예수회의 해산과 재건을 기준으로 우리는 변화하게 되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9-09-04 11:39:50 영성나눔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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