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예수회원을 만나다 (7) - 김상용 S.J. -

관리자
2021.04.20 16:08 86 0

본문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그는 말의 마디를 고를 때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오래 뜸을 들인다.

 

그에게 말은 진리의 선포이며

진리는 아름다움이고

그 아름다움은 오직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끝없는 어둠과 죄 속에서

고요하고 작은 빛을 따라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다 말하며,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젊은이를 만나는 한 신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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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 집안에서 자라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님께 성소의 씨앗이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7대째 천주교인 구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옛부터 가족 중 신부님 수녀님도 참 많으셨어요. 심지어 외할아버지 역시 신학교에 들어갔다 나오신 이력이 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신학교에서 나오신 뒤에도 분도회가 지금 왜관에 자리를 잡도록 많은 도움을 주시며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이어오셨고, 저희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셨어요. 어머니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요. 그 시대에도 외할아버지께서는 특별히 남녀 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자녀들에게 고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셨다고 하십니다. 제게는 그런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 분도 수도회에서 전례에 참여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다만 집안에 워낙 성직자와 수도자가 많다 보니 어린 시절 저는 그 사실을 참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명절이나 친척 모임이 있는 날이면 늘 신부가 되어야한다는 말이나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는 점검의 말들이 들려오니 더욱 더 거부반응을 보였지요. 반발심이 커서 ‘나는 절대로 커서 신부나 수도자가 되지는 않겠다.’고 대놓고 선언까지 했었습니다. 사제의 길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아주 야망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신부님께서 예수회에 들어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좋아하는 영화과에 진학해 공부를 하고 졸업을 앞두었던 24살 무렵,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예전부터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부모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그 무렵엔 정도가 심했습니다. 이렇게 사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죠.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그때가 소위 말해 제일 잘 나가던 때였어요. 야망도 컸고, 일도 많이 했고, 제가 쓴 시나리오가 해외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고, 아주 큰 제작사와 새롭게 영화를 만들 기회도 생겼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있었지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저의 내면에는 심각한 자기 혐오와 무의미가 뿌리내리고 있었어요. 그럴수록 자리를 잡고 싶었고 성공과 안정을 붙잡고 싶어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던 중 좋아하던 사람에게 결혼을 하자고 고백을 했는데, 그에게 예상치 못한 거절을 당했습니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홀연히 떠나버렸어요. 전혀 준비가 안 된 채 맞이한 실연은 어마어마한 상실이었습니다. 사랑을 잃고 배신감마저 느끼니 저의 근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허망함을 감당하지 못한 채 떠돌다가 28살, 도망치듯 수도회에 입회해버렸습니다. 제가 입회할 때, 주위 사람들 모두 “쟤는 1년 안에 나간다.”라고 했지요. 그렇게 망명하듯 예수회에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성소였구나 싶지만 그때 저의 마음은 그저 끝없는 어둠이었습니다.

 

입회 후 양성 기간 중 신부님께 있어 가장 중요한 체험은 무엇인가요?

학교 다닐 때, 도스토예프스키에 꽂혀서 그의 모든 책을 다 읽은 적이 있어요. 저는 뭐에 꽂히면 끝까지 파는 성격이에요. 병적일 정도로요. 수련원 2년 차 때, 하필이면 수업에서 한 신부님이 도스토예프스키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신부님 말씀은 곧, 그런 소설보다는 관상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팬심 때문이었는지 아주 화가 났어요. 당시 제게 수련장 신부님으로 대변되는 내적 목소리의 말은 ‘아름다움을 상회하는 가치가 있다.’였지요. 하지만 저는 ‘오직 아름다움만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주어진 명제는 제 평생 수도 생활의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름다움을 상회하는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금의 차이는 생겼지요. 과거에 제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대부분 본질이 아닌 주변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에 와서 제 마음 안에 선명해진 명제는 ‘진리는 아름답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에의 접속은 오직 영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예수회 안에서 배웠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예수회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 이제 너는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래서 지금은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고 계신가요?

글쎄요. 사실 저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품어 온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저의 근원적 약함에 대한 것입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저 자신의 병적이고 나약한 모자람을 은폐하려고 열심히 애쓰는 자아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냐면요. 살면서 아무리 골 때리고 터무니없는 사람을 목격했을 때조차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야, 그래도 나보단 낫지 않냐.’ 하고 스스로를 비하합니다. 그리고는 내 모자람을 은폐하기 위해 온 영적 힘을 쏟곤 하지요. 그런 제가 은폐의 태도에서 내 부족함에 대한 고백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데에는 선배 예수회원들로부터 받은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특히 정일우 신부님, 민기식 신부님께 받은 사랑은 제게 마치 새로운 부모님에게서 새롭게 태어난 것만 같은 삶을 부여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정일우 신부님께 영적지도를 받았던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분이 주신 유산과도 같은 영신수련에 대한 체험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종종 예수회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 안에서 깊은 존경심과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매일 아침 새로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벗으로 살고 그런 형제들과 함께 있기에 높으신 분께서 저를 일으켜주시는 것임을 매일 같이 깨닫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삶에 있어 초월의 영역 역시 아주 중요 한 삶의 영역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모든 영역을 초월하는, 경계의 허물어짐은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물론, 아직 선명해지지 않아 언어로 정리하지 못하겠는 이야기 역시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지금은 그저 살아가면서 차차 더 배우고 정리해 나가고 싶다는 마음뿐입니다.

 

김상용 신부님 2.jpeg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계신데요. 그 안에서는 어떤 체험이 있나요?

처음 임용이 될 때 당시 평신도 총장님께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때 저의 대답이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가톨릭 사제이고 예수회원입니다. 제게 가르치는 것은 선포하는 것. 즉 Preaching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제겐 그야말로 최선의 답이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내가 믿고 알고 살아가는 가치를 나누고자 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제가 사는 삶이 그대로 드러나야하고 학생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겠지요. 지금은 아트앤테크놀로지 학부에서 서사미학, 이야기, 스토리텔링, 비주얼 스토리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것들이 지식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가치로서 선포되기를 바랍니다. 그 가치라 함은 복음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들이 지금의 세상에 참 맞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이상 가치 선포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저의 태도 역시 그와 함께 변해간다는 점입니다. 즉, 어떤 결과를 도출하려는 태도에서 ‘잘 있으려고 하는’ 태도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내가 더 잘 임해야겠다. 내가 더 잘 있어야겠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곤 합니다.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다보면 그 안에서 성찰하게 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세상이 젊은이들을 난민처럼 가르친다는 생각입니다. 아주 응급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축적의 시작, 기다림의 시간을 전혀 허용받지 않습니다. 다급하게 흘러가고 이동하고 변화해야하는 삶이 상시화되어 있지요. 마치 난민처럼 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은총 가운데에서 감사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집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은총이 도래해도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것이 참 마음 아픕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려봅니다. 기다림의 온전한 시간이 삶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을 비로소 기념할 수 있는 것인데. 어느 누구도 젊은이에게 그것을 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심지어 교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 이 난민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예수회원으로서 사는 삶, 행복하신가요?

제가 예수회를 통해 받은 최고의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관이 열리는 체험’이었습니다. 그런 생각과 더불어 꺼내고 싶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파울첼로의 <Once(언젠가)>라는 시입니다. 일부만 읊어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사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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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신수련을 통해 배우고 또 활동 안에서 관상하며 세상에 선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고 일하고 기도하는 것은 신비이며 은총입니다. 세상에 있으며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저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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